방어기제란 자아가 내외적 위협을 어릴 때부터 받아오면서 스스로를 지키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발전시켜 온 인격의 특성입니다. 십수 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철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장 후에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 성격의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방어기제는 개인의 각기 다른 핵심감정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핵심역동은 핵심감정과 이를 다루는 방어기제의 특성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매우 유치하며 병적이며 미숙한 것에서 건강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여 개인의 건강 혹은 병적으로 나타나는 방어기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격갑옷의 방어기제
방어기제의 역할은 매우 단단한 보호막으로 자기 스스로를 내부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막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Wilhelm Reich는 이를 '성격갑옷(character armor)'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방어기제는 핵심감정의 모습, 즉 의존욕구, 권위에 대한 분노, 낮은 자존감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개인은 어려서부터 거의 동일한 환경과 자극 아래서, 즉 동일한 부모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대체로 유사한 갈등, 즉 핵심감정에 노출됩니다. 따라서 개인은 동일한 방어기제를 반복 사용하며 보다 적응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동일한 방어기제를 무의식하에 자동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방어기제가 하나의 성격갑옷으로 자리 잡게 되는 기제입니다. Heinz Hartman은 이를 자동화(automatization)라고 불렀습니다.
방어기제는 정신·경제적인 측면에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박적 성격 또는 증상은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을 위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최소의 정신 에너지를 들여 최대 효과를 보기 위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방어체계를 구촉한 것입니다. 따라서 강박적 성격이나 증상은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강박성격이나 증상은 꼭 필요한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굳어진 인격으로 자리 잡아 아무 때나 작동하므로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방어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작동되다 보니 에너지가 많이 들고 대인관계 문제도 생기고 갈등도 생기게 됩니다. 결국 강박증은 인격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는 갈등을 낳게 됩니다. 더욱이 방어기제는 블랙혹처럼 만족이 없이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에 매우 비경제적 구조입니다. 따라서 상담 치료는 이미 굳어져서 지칠 줄 모르고 피곤하게 만드는 건강하지 못한 방어기제를 완화시켜 보다 융통성 있게 경제적으로 불안을 통제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방어기제의 종류
억압(repression): 의식에서 용납될 수 없는 생각, 욕구, 충동을 완전히 무의식 속에 억누르려 하는 것입니다. 죄책감, 수치심 또는 자존심을 상하는 경험일수록 억압되기 쉬우며 무의식적 과정이라 어린 시절의 불쾌한 기억을 억누름으로써 그 시절의 기억이 상실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긴장은 감소되지 않기 때문에 과도한 억압은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됩니다.
억제(suppression): 억압과 달리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불쾌한 또는 부담스러운 충동, 감정, 생각을 의도적, 반무의식적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불편함은 의식되지만 최소화됩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체중조절 때문에 참는 경우입니다.
투사(projection):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 태도,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사람이 먼저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라 여기며 남 탓을 하는 것과 자기 잘못은 못 보고 남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치(displacement): 본능적 충동의 표현을 재조정하여 위협이 덜 되는 상대에게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불안을 줄이는 것입니다. 애꿎은 대상에게 화풀이하는 것입니다. 전치가 자신에게 향하면 우울증과 자기 학대의 원인이 됩니다. 이 방어기제는 공포증의 증상이 되기도 하고 전이감점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합리화(rationalization): 용납될 수 없는 충동이나 어떤 행동에 대해 사회적으로 용납될 이유를 찾음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존심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의식적 과정으로 거짓말과는 다릅니다. 이솝우화의 [신포도] 따먹기에서 너무 높이 달린 포도를 보며 여우가 하는 말입니다.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억압된 용납될 수 없는, 금지된 충동, 욕구를 반대되는 행동을 통해 표출되게 함으로써 자신을 조절하거나 방어하는 것입니다. 부양이 부담된 노무에 대한 지극 정성, 지나친 금욕주의적 신앙, 이타주의도 반동형성의 하나로 받고 싶은 자기 본능의 충족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잘 도와줌으로써 대리만족을 하는 것입니다.
퇴행(regression): 어려움이나 스트레스에 처했을 때 안전하고 즐거웠던 지난 시간으로 후퇴함으로 불안을 완하는 것입니다. 동생을 본 아이의 야뇨증, 친구가 심하게 다치는 것을 본 아이의 손가락 빨기 등의 행동이 해당됩니다.
고착(fixation): 발달의 한 단계에서 욕구의 지나친 충족이나 지나친 부족은 다음 단계로의 성숙을 방해하며 특정 발달 단계 및 양식에 머물게 됩니다. 대인관계에서 매사 상대방에게 의존적으로 행동할 경우 구강기에 고착된 것입니다.
보상(compensation): 심리적 자위와 관련된 기제로 자신의 결함을 다른 현실적 또는 상상적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부모나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자신의 신체적 조건의 열등감을 오히려 공격적이고 지배적 속성으로 매우려는 것입니다.
상환(restitution):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 선행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상쇄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적선행위입니다.
부정(denial):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부인하고 불안을 회피하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억압과 달리 부정은 자아기능을 분리시킴으로 소망과 사고의 표현을 차단하는 것으로 심각한 부적응을 초래합니다. 암 선고를 받은 환자가 자신에게 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동일시(identification): 남의 성격이나 역할을 본떠 자기의 일부로 삼아 우월감 또는 안정감을 가지려는 것입니다. 적당한 동일시는 인간에게 이상, 야망, 포부를 심어 주지만, 지나치면 망상에 사로잡혀 부적응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발달과정에 자녀는 부모를 동일시함으로 닮게 되고, 제자는 스승을 흉내 내며 닮습니다. 청소년의 연예인 따라 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적인 동일시는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이 성장 후에 공격자와 동일시되어 무의식 중 다시 폭력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한편 상담자의 내담자 공감도 동일시의 한 예입니다.
내재화(introjection): 원시적 수준의 병적 동일시로 자신과 타인을 막연히 구분하는 중에 대상의 특징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유아는 자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을 통해 자기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이지화(intellectualization): 불안이나 긴장을 수반하는 불쾌한 상황이나 경험에서 감정을 억압하고 그 상황이나 경험을 지적으로 객관화함으로 정서적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내담자의 경우 자신의 과거 감정적 경험을 내용만 논리적으로 차분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분리(isolation): '격리'라고도 하며 고통스러운 생각과 기억은 의식하지만 수반된 감정을 무의식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굉장히 난폭한 아버지의 폭력 장면을 말하면서 그때의 감정은 표현하거나 기억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백일몽(day-dream): 현실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공상을 통해 만족함으로 긴장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공상(fantasy)이라고도 하며 일상생활에서 많은 상상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취소(undoing): 지나간 행동, 감정, 생각을 특정 행위나 의식적 태도를 통해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술적 사고가 작용하는데, 죄책감이 있을 때 반복해서 손을 씻는다거나 불경스러운 단어를 말한 경우 그것을 지우기 위해 성스럽다 여기는 단어를 말하는 강박증의 행동이 있습니다.
분열(splitting): 타인이나 자기를 모두 좋거나 모두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좋기도 나쁘기도 한 양가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아주 좋은 사람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나뉘는 극단적 이분법적 사고를 갖습니다. 지나친 호의가 지나친 혐오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대치(substitution): 욕구불만으로 생긴 긴장을 감소하기 위해 원래의 대상과 비슷한 용납되는 다른 대상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꿩 대신 닭"인 경우입니다.
승화(sublimation): 성적·공격적 충동을 사회적으로 용납된 생각이나 행동으로 적절하게 전환하는 것으로 다른 방어기제들과는 달리 본능(id)을 반대하지 않고 도우며 자아의 억압이 없고 충동의 에너지를 그대로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사용합니다. 공격성을 승화시킨 권투선수, 내적 갈등을 심미적인 예술로 표현한 화가, 가학적 충동을 수술 등의 의학 기술로 해소하는 외과의사 등이 있습니다.
상징화(symbolization): 무의식적 욕구와 감정, 생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상징을 통해 발산하는 것으로 다양한 꿈의 내용은 상징화의 예입니다.
해리(dissociation): 인격의 여러 요소들을 통합, 조정하는 기능이 상실되어 인격의 한 면이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경우로 해리성 기억상실이나 다중인격의 증상이 있습니다.
유머(humor): 마음에 가지고 있기 힘든 것을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아 표현함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만족을 주며 견디고 해결해 가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안정감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어기제입니다.